[기고] K-야행의 가능성, 광주 원도심에서 본 근대건축유산의 미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5-28 15:00 조회29회관련링크
본문
지난 4월 24일과 25일, 광주 원도심의 밤은 여느 때보다 환하게 반짝였다. 동구의 국가유산을 주제로 펼쳐진 ‘2026 광주 국가유산야행’이 도심 곳곳을 비춘 덕분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야행은 3만 4천여명의 관람객에게 밤의 정취와 역사의 숨결을 선사하며, 광주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줬다.
광주 원도심은 도시의 태동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변화상을 간직한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고려시대 나라의 안녕을 빌던 재명석등의 염원부터 조선시대 행정·군사의 중심이자 생활상을 상상하게 하는 광주읍성,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며 세워진 옛 전남도청과 서석초등학교까지. 이 공간들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광주의 오늘을 만든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광주 국가유산야행은 이처럼 두터운 역사성을 지닌 원도심의 자산을 ‘야간 문화 향유’라는 그릇에 담아낸 대표적인 축제다.
이번 야행은 그동안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던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5·18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 본관과 회의실, 그리고 서석초교 등 근대 건축물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광주 근대유산의 진정한 가치는 ‘역설의 역사’에 있다. 일제가 수탈의 거점으로 삼았던 아픈 과거를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의 설계로 완성된 붉은 벽돌 건물의 세련된 미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방 이후 하얗게 칠해진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시민들의 소통 창구이자 행정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이어 1980년 5월을 거치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라는 숭고한 위상을 얻게 된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모더니즘 건축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평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입은 이 ‘공간의 반전’은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서사다. 이것이야말로 광주 근대 건축유산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문화’ 자산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야행은 국가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으로 풀어내는 데 역점을 뒀다. 지금은 사라진 광주읍성 유허를 화려한 ‘빛 터널’로 재현하여 도시의 시간을 복원했고, 평소 일반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웠던 서석초교 체육관을 전면 개방하여 시민들을 역사의 내부로 초대했다. 130년 서석초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와 함께 미래 학교에 메시지 남기기 등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은 국가유산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의 일상과 연결하는 중요한 시도였다. 이러한 활용이야말로 광주가 선도하는 국가유산 축제의 미래를 보여준다.
올해 광주 국가유산야행은 광주의 근대유산이 얼마나 매력적인 미래 동력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어둠의 시대에 태어났으나 이제는 민주주의의 빛을 발하는 광주의 건축유산은 그 자체로 차별화된 K-콘텐츠다. 이번 야행은 원도심의 역사 공간을 ‘빛·체험·서사’로 재구성함으로써 광주만의 가치를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로 확산시킬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밤을 밝힌 국가유산의 빛이 단순한 축제 행사를 넘어, 도시의 기억을 축적하고 세계와 공유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 플랫폼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